제4강 구원을 받았나요?
나는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는데,
그동안 성경공부도 수없이 했고 예수님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왜 내 안에 천국에 대한 기대감이나 사모함이 전혀 없이 살고 있는 것인가?
나의 마음은 온통 현실에 붙들려있고 구원하심과 주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이 없이
살아가면서도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의 실상이 이러한데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구원을 사모하고 주님에 나라를 준비하
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한 심각한 질문으로부터 말씀공부는 시작되었습니다.
교리적이고 지적인 단순한 신앙고백이 과연 나의 영혼을 주님의 나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구원하심과 천국에 대한 나의 생각이 이토록 피상적이고 관념적이고 사변적인데
나아가서 거짓되고 잘못되어 있는데? 구 원의 기초가 잘못 놓여져 있는데..
내가 진정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주님의 나라가 이땅의 현실보다 더 익숙해져가야 하건만,
이땅에서의 일상을 능가하는 것이 되어야 하건만,
롯의 처에게 구원의 손길이 주어졌을때 그녀는 뒤를 돌아다 보았습니다.
세상을 뿌리치지 못해 이 영혼은 구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일을까 함이라“(히4:1)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
며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
느니라“(고린도전서 10장 1절~5절)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가나안(영원한 구원)을 향해 나그네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홍해를 지나갔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 세례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도 예외가 없이 다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음료(메추라기와 만나
그리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으니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들중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신고로 이스라
엘 603,550명이 광야에 엎드러져 멸망을 받았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직 노아 일가족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롯과 일가족만 구원을 받았습
니다.
에서는 장자권(오늘날로 말하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축복권)을 팥죽 한그릇에 팔아
버렸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장차 현대판 에서의 후예들이 나와서 자기의 영혼을 팔고,
적그리스도에게 가서 경배하고 얼마동안 생활의 보장을 받는 자들이 나올 것을
경고했습니다.(히12:16)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이 가벼운 것인가?
이것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축복권인데, 이땅에서 살다가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
생활의 곤란을 겪을 때 그때 우리가 가진 믿음이 진짜인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시잠깐의 육체의 생명을 위해 장자권을 일거에 내다버린 에서와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다가
세상의 대세를 따라가다가, 잠시잠깐 생활의 보장을 위해
우리가 받은 축복권을 소홀히 여기고, 경홀히 여기고, 우리의 영혼까지
팔아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고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같던 이유입니다.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버림이 될까바 두려워했던 바로 그 이유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행위가 구원에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는 것은 백만번 사실입니다.
그러나 행위가 따르지 않고, 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믿음과 구원은 가짜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행위가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행위는 단순히 착한일, 좋은 일, 도덕적으로 올바른일이 아니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무례하게도
예수님에게 가기위해 지붕을 뜯어내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여인은 정탐군을 숨기고 매국노의 길을 택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혈루병 여인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믿음의 행위는 때로는 무례할 수도, 때로는 과감할 수도,
때로는 도덕적이지 않을수도 있었습니다.
반면 단순한 지적동의는 결코 참된 믿음도 참된 구원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것은 잘못되고 거짓된 기초입니다.
단순히 입으로 시인하는 것으로는 구원이 없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
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서 1:16)
이것은 사실인데,
구원에 대한 잘못된 교리가 사람들을 미혹하여 구원의 기초를 바로 세우지 못하므로
교회안에서 진리가 타협이 되고, 교회가 지식화 되고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교회안에서 사라져 감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병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이 좁고 협착하다고 하셨는데
누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토록 약화시키고 상대화시켜놓은 것입니까?
누가 사도가 말한 <입으로 시인>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변질시키고 약화시키고 병들게 한
것입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그져 공과공부 몇강을 하고 몇가지 질문을 해서 아멘을 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말씀으로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물론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였듯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요한복음 9장과 12장을 보면 회당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출교를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 당시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한다는 의미는 교회에서 공중 앞에서 시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원수 앞에서 나의 생명을 담보
로 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
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
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2)
이 변질되고 약화된 구원관은 성도들을 공공칠신자로, 명목상의 신자로 만들어버렸습니
다.
성도들이 세상앞에 자신을 구원받은자로, 예수믿는 신자로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음으로
세상 사람들은 사교적이고 악한 일이나 육신의 일에 참여하기로 결정할 때 이 명목상의 신
자들을 계산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한번은 거부한다 하더라도 두 번째 또 요구를 당하게 될 때 거절할 힘이 없
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신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생쥐와 같이 비겁한 때가 있었습니다.
너무도 쉬운 질문에 대해서도 용기를 잃고 감히 주님을 시인하지 못했습니다.
자격없는 일개 하녀 앞에서 조차 증거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칼을 빼기도전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바보들입니다. 연약한자라구요 좋습니다. 나약한자
라구요 좋습니다. 연약한 자이기전에 비겁한 자들입니다.
나약한 자 이기전에 부끄러운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상대화시키고 약화시키고 변질시키고 외곡시키는
것이 가한 일인가? 사도의 말을 이렇게 힘없게 만들어 버리고 기고만장해 있는 것
이 주님께 친찬을 받을 일인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드러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중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일도 구원의 좋은 시작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시작
입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예수님과 사도가 말한 구원의 바른 진리위에 세워야합니다.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교재 본문에서 구원받은 강도의 말을 들어봅니다.
41절, 그는 자신이 이 참혹한 십자가형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합니다.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고 예수님께 마음의 중심이 향해진 것입니
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그에게서 십자가가 제거되었다고 해도
그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42절을 읽으면서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거든 나를 기억하소서”
그는 일생을 끔찍한 강도짓을 일삼은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을 받을 정도로
끔찍한 죄를 저지를 죄질이 아주나쁜 흉악범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평생을 악만을 생산해왔던 그의 입에서, 한번도 성경공부나 교리공부를 해본 사람
이 아니었는데.. 그는 부활과 대속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의 눈에 그리스도에 대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그의 내면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지식으로 전수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회개한 영혼에게 임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었습니다.
강도는 평생 성경공부라고는 해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은 학습이 아닙니다. 구원은 공부를 통해 지식으로 전수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도 해야하고 교리공부도 해야하지만,
구원은 회개한 영혼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가 분명하지 않은 구원은 잘못된 것이고 거짓된 것입니다.
저는 이 공부를 준비하면서 원수마귀의 공격이 있을것을 대비하고
구원과 믿음이 지식으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의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2시간 넘게 공부를 했는데도 공부를 마치며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여기에 기록하지 못한 많은 예기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저에게 우리 목원들에게 못다한 말씀이 있습니다.
덧붙이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 어머어마한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구원받은 우리들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이렇게 거대한 댓가를 지불하셨
을까요?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구원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되고,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함으로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믿음에 관하여 파선될 수 있다는 사도의 경고를
겸허히 믿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 구원하신자들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에 대해
더욱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협착합니다.
구원의 길에는 두 개의 커다란 도랑이 있습니다.
우측에 하나님의 인자만을 너무도 강조하는 불법의 도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습관적인 죄나 성령을 회방하는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주를 고백한 나를 마침내 구원하실 것이라는 잠꼬대같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좌측에는 하나님의 엄위만을 너무도 강조하는 율법의 도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11제자들처럼 거듭났지만 미성숙하여 서로 시기하고 다투는 영적
어린아이들을 구원받지 못할자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다 잘못된 구원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아간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었지만 탐심이 그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예수님께 부름을 받고 3년이나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더불어 먹고 더불어 마셨고 동고동락했던 가롯유다가
돈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길을 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안에 있었지만 돈을 사랑함으로 마침내 멸망되었다는 사
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13번째 재자가 될뻔했던 부자청년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돌아섰는지...
무엇이 사도바울이 눈물로 개척했던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사도에게서
나아가서 예수님에게서 돌아서게 했는지를...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이것을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디모데전서 4장 1~2)
어떤 사람들 믿음에서 떠납니까..처음에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에서 떠나는 것은 모순이죠?
“부하려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
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
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OK목장 목원들이여!!
아무도 우리 자신을 미혹하지못하도록 하십시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주님의 군대로 일어나십시오.
댓글 4
김장주 2009.10.21 21:09
아멘아멘!!! 집사님 확실한 말씀이십니다. 구원은 좁은 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니 두렵고
떨리네여.
서종덕 2009.10.19 14:40
OK목장 집사님들이 구원의 바른 기초위에 신앙을 세우고 나아가서 사람들을 바른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목양교사로 결단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서종덕 2009.10.19 12:35
구원을 얻으려면 단순히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거나 영접하면 된다고 함으로써 회개에 대한 요구가 희미해져가고 있고, 죄에서 떠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던지고 온전히 따르려는 결단과 복종하려는 진지한 소원이 없기때문에 철저한 회개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음으로 말미암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종덕 2009.10.19 12:35
후안까를로스오르띠즈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구워에 대한 외곡된 견해를 선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고, 또언쟁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 변질되어 왔다. 제프리윌슨은 이것으 싸구려복음, 뒤틀려진 복음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