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다 자신 위주의 삶을 삽니다.
하지만 목자는 양위주의 삶을 삽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 삽니다.
하지만 목자는 양의 안위를 위해 삽니다.
나는 갈수록 나위주의, 가족위주의 삶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오늘 아침에, 불현듯이 마음에 착 부딪치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가수다."
가수는 가창력, 즉, 노래로 승부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화려한 의상과 무대매너도 중요하지만요.
나는 무엇으로 승부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나 자신은 그동안 나와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서 달려왔습니다. 그동안 나와 가족을 위한 투자를 제대로 못해서, 더욱 매달리는지 모릅니다. 목자생활시절 비교를 해보면, 다른 목자들보다 나을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보낸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그들보다 한참 모자랍니다. 아직도 믿음의 자리를 지키며, 번제단을 쌓는 것 같은 이들을 보면, 대단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순수함이 남아 있는 옛시절의 동역자들을 보면 멋있어 보입니다.
떠나온 시간들을 보면, 어느새 나 자신도 무언가를 이룬 줄 알았는데, 너무나 빈약한 자신을 보면서 한심해 하기도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불타는 열망이 살아서 꿈틀대지만, 보이는 현실에 매여 사는 자신, 자신을 넘지 못하고, 여전히 무엇인가에 발목잡혀 사는 자신이 보입니다. 그동안 무엇인가 남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서, 노력하고 발버둥쳐 보았지만, 아직도 하나님앞에 먼 자신이 보입니다.
눈을 떠보면 불안한 세상에서, 불안함이 가끔씩 몰려 옵니다. 처음에는 작은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마치 폭풍우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지금은 마치 소감을 쓰는 것 같습니다.
'나는 목자다' '나는 양무리의 목자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현실에 묻혀 버린 열매없는 길가의 돌맹이 같은 자신이 보입니다. 슬퍼집니다.
가끔씩, 교회의 구석지에 앉아서 과거를 회상해 보면, 스스로가 슬퍼집니다. 스스로가 안타까워 집니다. 껍데기를 벗고서, 가식의 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독수리 날개치는 힘으로 비상하고 싶은데,,,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싶은데,,, 내가 하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선하신 개입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고 싶은데,,, 나에게 은혜와 덕을 끼친 사람들에게 그 빚을 갚고 싶은데,,, 아직도 그 곁에서 맴돌고 있는 자신이 보입니다.
조만간 새로운 결단을 해려고 합니다. 없어지지 않을 가치를 위해서 없어도 될 가치를 버릴 줄 아는 현명함을 지니고 싶습니다. 썩어 없어질 우상의 것들보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의 것들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집 뒤에는 남산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오르고 있는데, '한국칸트의 산책'이라고 부릅니다.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서 '진리'의 산을 오르는 연습을 합니다. 칸트는 '진리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가치'라고 하였는데, 그 가치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고 싶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을 좇아서 살며, 믿음의 향기를 더욱 드러내는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하지만 Quality Time - 카이로스의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늦기전에 인생의 큰 초석을 더욱 놓고 싶습니다. 더 늦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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